직장인 만성스트레스

내가 침묵했던 이유 – 말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자기검열 심리

스트레스 타파 2025. 8. 20. 07:00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직장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수십 번 시뮬레이션만 하다가 결국 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이 말을 하면 조직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같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제가 직장에서 겪은 자기 검열의 심리와 그 배경이 된 수직적 조직문화,
그리고 그 침묵이 어떤 스트레스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침묵한 이유

1. “말 조심해라”는 말이 몸에 밴 조직

제가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가장 많이 했던 조언은
**“괜히 나서지 말고 말 조심해”**였습니다.
그 말은 마치 암묵적인 생존 전략처럼 들렸습니다.

실제로 회의 중에는 상사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고,
팀장이 불합리한 지시를 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조용했고, 고개를 끄덕였고, 눈치로 말 대신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나의 의견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예의 없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점점 스스로 말의 내용을 줄이기보다, 말을 아예 포기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2. 자기검열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습관이다

자기 검열은 단순히 말을 삼가는 게 아닙니다.
‘내 생각은 틀렸을 수 있어’라고 전제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희석시키는 과정입니다.

회의에서 개선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걸 내가 말하면 괜히 오해받지 않을까?”
“상사가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괜히 튀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어.”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결국 말을 삼키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되고,
‘내 의견’이라는 개념이 사라집니다. 마치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지우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3. 침묵은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은 보통 침묵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침묵이 반복되면, 감정과 의견이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만 떠돌게 됩니다.

제가 침묵하던 시절,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감정들이 쌓였습니다:

  • “나는 왜 아무 말도 못할까?”
  • “다들 틀린 걸 아는데, 왜 나만 답답해하는 걸까?”
  •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녀야 하나?”

결국 저는 말은 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는 수십 번씩 말하고, 반박하고, 설득하는 ‘가상의 회의’를 혼자 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침묵은 조용한 감정소모였고,
그 감정은 점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4. 나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 수직적 문화의 무의식적 압박

자기 검열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둘러싼 조직 구조와 문화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몸담았던 조직은:

  • 의견이 상사 뜻과 다르면 “예의 없다”라고 평가했고
  • 실수를 지적하면 “왜 굳이 분위기를 깬다”라고 했으며
  • 문제를 제기하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걸 왜 크게 만드냐”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이 곧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하게 되고,
나중에는 ‘말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5. 침묵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내 실천 방법 3가지

1) ‘발언’이 아닌 ‘표현’부터 시작했다

저는 말을 할 때 ‘발언’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정의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습니다.

처음부터 의견을 내기보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 봤어요”
“이런 방향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처럼 부드럽게 자기표현을 하는 문장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연습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게 됐습니다.

 

2) 작은 회의에서부터 발언 연습

10명 이상이 있는 팀 전체 회의보다는,
3~4명이 있는 실무 회의에서 먼저 발언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말하는 경험을 반복하자
점점 ‘내 의견을 말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자주 하다 보면
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말에 대한 익숙함이 자리 잡습니다.

 

3) 상사의 피드백을 정리해 내 언어로 되돌려줬다

가장 어려운 건 상사에게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사가 말한 내용을 듣고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정리된 형태로, 내 말로 바꾸어 요약해서 전달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예:

“팀장님 말씀은 이러이러한 부분을 고려해 수정해 보자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제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반박이 아닌 확인을 가장한 의견 표현이 되었고,
상사도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점점 늘었습니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시간도 나였고,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나도 나다

오랫동안 침묵은 나를 보호해 주는 전략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침묵은 내 감정과 생각을 희미하게 만들었고,
나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감 없는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말합니다. 다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생각은 드러내야 정체되지 않습니다.
내가 느낀 걸 말하고, 내가 본 걸 말하고, 내가 생각한 것을 나눌 수 있어야
조직 안에서 ‘살아 있는 나’로 설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말하지 못했지만,
내일은 한 문장이라도 내 감정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이,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시작이 될 것이다.”